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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s 뒤질랜드

농심 "발효" 카프리썬 사건의 전모...그리고 느낀 점


오늘 아침 10시. 
목이 말라 4층의 미닛메이드를 먹을까, 5층 냉장고에 갖다놓은 카프리썬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오렌지색 빨대에 끌려 :] 카프리썬을 골랐습니다. 빨대를 톡! 꽂아 입안 가득 쥬스를 빨아들였는데...

상큼한 과즙을 기대했건만, 알 수 없는 액체의 시고 떫은 맛이 혀를 고문하기 시작했습니다.
혀를 휴지로 닦아내다시피 하고 나니 농심 고객 센터에 전화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홈페이지에 접속했습니다. (
Go to: 농심 홈페이지 고객마당)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메일 상담과 설문조사만이 가능한 것을 보고 저는 황당함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과연 이들이 생쥐깡 소동의 중심에 있었던 "농심"이 맞나......
제품 포장지에도 Hotline 번호 같은 건 써있지 않고...
홈페이지라도 들어가면 고객센터 전화번호가 메인 페이지 화면의 맨 아랫쪽에
떡하니 있을거라고 생각했던 저로서는 어이가 없더군요.
속이 점점 안 좋아지는 기분이 드는 게 느껴졌습니다. '쉰 음식을 먹었다'는 심리적 요인 때문인지는 몰라도
속이 뒤틀리는 기분이 잠깐씩 들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오시는 길" 페이지에 적힌 본사 대표 번호로 전화해 고객 센터 번호를 물었습니다.
miss 안내원은 친절한 목소리로 번호를 알려주었지만, 고객센터 번호조차 찾기 쉬운 곳에 띄워 놓지 않는
농심의 무심함(또는 무식함?) 때문에 번거로운 마음에 처한 저는 그 목소리가 거슬렸습니다. 
고객 센터에 다시 전화를 거니, 이번에는 또 친절한 목소리의 아저씨가 전화를 받습니다.
친절이 과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사람 대 사람으로 내 얘기를 듣고 공감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마치 내가 못된 상사가 되고, 못된 상사에게 꼼짝 못하는 부하와 얘기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 분은 물론 자기 맡은 일을 열심히 하시는 거겠지만.....어쨌든 그 이후에 나눈 대화가 문제입니다. 

"맛이 완전히 변질된 카프리썬을 오늘 먹었는데......맛이 너무 이상했다...
속이 조금 안 좋은 거 같기도 하다.."고 한마디 했더니 "농심 고객 안전 센터"의 그 분은
내가 아프다고, 식중독이나 장염에 걸렸다고 드러누울 게 바로 걱정됐나 봅니다.  
지나치게 방어적인 태도로 아저씨는 왜 변질된 쥬스가 신체에 유해하지 않은지를 쭉 설명했습니다.;;;;;

카프리썬에는 단백질이 함유되어 있지 않고, 당=탄수화물이 함유되어 있는데, 그게 발효되어서 맛이 그렇게 된거다...
만약 변질된 단백질 성분을 먹으면 장염, 식중독에 걸릴 수 있겠지만, 변한 당 성분은 안전하다...아프지 않을거다...
나의 불쾌함을 과학적 논리로 잠재우려는 그 시도는 아저씨가 했던 진심어린 사과의 말들을 모두 흐렸습니다.
 아저씨의 의도는 분명,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설명과 함께 놀란 내 마음을 진정시키려는 것이었겠지만, 
제 귀에는 결국 그 말들이..."쥬스 변한 거 마시고 죽을 일 없으니, 좀 진정하시라" 로 들렸습니다.
변한 거 먹고 안 아프면 그걸로 끝인지...생쥐가 나와도 보고 골라내서 안 먹으면 그만인지...

변질된 카프리썬 샘플을 가져가기 위해 다른 직원이 제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 회사 앞으로 왔습니다.
그 분도 어쩜 그리 반응이 똑같은지. 제가 통화한 분과 똑같은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저희 아버지 뻘 되는 아저씨가 죄송하다고 자꾸 그러니 그만 따지고 관두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저에게 여러 번 사과를 했던 이 두 아저씨를 생각하며...
위기 관리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이 작은 사건 하나를 농심 전체의 위기로 보긴 어렵겠지만...

* 위기가 터졌을 때, 무조건 "I'm sorry"를 연발하는 건...진심을 전달하기보다는 위기를 억누르려는 것처럼
보이는 것 같습니다. 위기를 억누른다고 위기가 해소되는 건 아닌 듯 합니다.
잠재우고 억누르려 할수록 불만이 작아지기는 커녕 꾹 눌린 스프링처럼
나중엔 감정이 부정적인 쪽을 향해 더 큰 반작용의 힘으로 튀어 오르는 것을 제 스스로 느꼈습니다.
억누르는 방법이 사과라 할지라도 말이죠.  

* 위기에 처했다고 해서 일방적인 해명과 변명에 급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해관계자 또는 피해자의 피드백을 듣고, "그 피드백에 대한 피드백"을 해야지
무엇보다 자기 입장을 분명하게 하는 것, 자기가 결백함을 밝히는 것을 Priority로 두는 것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런 태도는 공감이 있는 대화를 차단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