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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s Crisis on the line

PR Firms = Propaganda ??



1993년에 설립된 비영리 단체 CMD(The Center for Media and Democracy)의 공동 설립자인 'John Stauber'는 PR을 Propaganda의 스펙트럼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그의 블로그와 유튜브에는 많은 의견들이 분분히 오가고 있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Propaganda'는 정치적 목적을 갖고 있지만 'PR'은 마케팅 비지니스를 비롯해 다양한 요소의 차원들이 접합되어 있는 형태를 지니고 있다. 물론 이것이 정답은 아니다.

사실 'John Stauber'의 주장처럼 굳이 정치적 스펙트럼을 입히자면 논의하지 못할 바 아니다.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만 있으면 된다.

정치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는 오랫동안 정치광고, 대선 TV토론, 정치 캠페인 등을 통해 네거티브한 접근으로 'Propaganda'를 묘사해 왔다. 이런 네거티브 정치 캠페인을 이끌어 온 주체들을 'Spin Doctor'라 부른다.

정식 용어는 아니지만, Spin Doctor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사건을 왜곡하거나 조작하는 사람, 국민의 생각이나 여론을 정책으로 구체화시킴은 물론 정부 수반의 생각을 국민들에게 납득시키는 역할까지 하는 정치 전문가 또는 홍보 전문가를 의미한다.

우수한 스핀닥터를 거느린 대표적인 인물로는 미국의 빌 클린터(Bill Cliton)이 손꼽힌다. 대통령 재임 당시 클린턴은 재임 기간 내내 르윈스키와의 성추문 사건에 휘말려 탄핵소추를 받으면서도 항상 60% 이상의 국민 지지율을 유지하였다.

이런 성공적인 클린턴 지지율의 뒷 배경에는 눈에 보이지 않게 활동하는 'Spin Doctor'들의 숨은 활동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정치 커뮤니케이션의 한 측면이다. 그 효과와 이론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의견이 분분하며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 지지를 받는 것은 없다.

John Stauber의 의견처럼, 불특정 다수의 공중들은 메시지를 생산하는 권력 집단(전문가, 기자, PR Agency, 광고, 캠페인 주체 등)이 만드는 메시지에 쉽게 노출되고 영향을 받을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다.

하지만 웹 2.0 커뮤니케이션 환경이 지배하고 있는 현재는 메시지를 생산하는 주체가 곧 메시지를 소비하는 소비자가 되고 메시지를 소비하는 소비자가 곧 메시지를 생산하는 주체가 된다.     

곧 현재의 수용자는 전통적인 매스 미디어 이론인 '탄환 이론'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받는 수동적 객체들이 아니라 자신의 필요와 욕구에 의해 정보를 부분적으로 수용하고 '이용과 충족이론' 성격에 가깝다는 것이다. 여기에 하나를 더 덧붙이자면 바로 정보 소비자가 정보 생산자로 바뀔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환경이 조성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John Stauber의 주장은 어떤 측면에서 오만하기 까지 하다. 영상의 중간에서

"Close your eyes!! And take words!! Deep breathe!!"

라는 매우 강압적인 메시지가 전달된다. 정보의 순환, 메시지 생산 주체의 순환, 커뮤니케이션 환경의 변화 등을 고려해 볼 때 많은 의견들이 대립될 수 있는 이슈로 남을 수 있다. 

"Best Propaganda is Invisible, Best Public Relation is Invisible"

정보를 생산하는 주체가 막후에서 여론을 지휘함에 따라 수용자들의 지각 및 인식에 많은 변화를 준다는 것엔 부분적으로 동의 한다. 식품, 의학, 바이오, 화학 등 인간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사업 분야에서는 메시지를 컨트롤 할 수 있는 능력도 기업경영의 큰 축에 포함되니 말이다.

그 만큼 현대는 관련 전문가들에 의해 정교화된 혹은 의도화된 메시지가 생산되고 소비자는 그 주어진 메시지 환경 속에서 제한된 선택을 하게 된다. GMO 포함 농산물의 유해성, 광우병 소의 전염성 등에 관한 다양한 주장들이 그런 한 예가 되겠다.

반대로 전통적인 시각에서 메시지를 수용하던 수용자의 측면에서 보면 정보생산 주체가 발생시키는 강력한 메시지는 더 이상 없다. 정보를 생산하는 권력이 '하나의 거대한 집단(전통적 매체 그룹)'에서 '다양하고 유연하게 분절되어 있는 집단(소셜 미디어 등)'으로 순환이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대 보수언론에 반대기치를 들고 민감한 사회 이슈에 즉각 반응하는 사회적 집단이 그 예이다.

전통적 의미에서 수용자들이 메시지를 수용함에 있어 커뮤니케이션 권력집단이 만들어 놓은 제한된 범위 내에서 선택 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중요한가?

이럴 경우 수용자들은 커뮤니케이션 권력집단이 설치한 '메시지 그물망' 내에서 메시지를 선택하고 있는 수동적 객체일까, 아니면 커뮤니케이션 권력집단이 장사(?) 해먹기 힘들 만큼 영악해져 깔아 놓은 그물망에 다리 뻗을 자리를 고를 수 있는 주체가 되어 가고 있는 걸까..

어떻든 간에 메시지 생산과 소비 주체의 영역이 점차 융합되고 불투명하게 되는 것 만은 사실이다. 바로 커뮤니케이션 환경의 변화가 그 중 하나의 요인이다.

이런 이유로 메시지의 힘은 강력하지만 일방적으로 흐르지 만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