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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Insight!

입을 맞추자

[정용민의 미디어 트레이닝]

기업&미디어 web@biznmedia.com


홍 팀장 회사에서 회심의 신제품을 출시한다. 홍보팀 전체가 마케팅과 함께 거의 날밤을 세우면서 신제품 출시 기자간담회를 준비했다. 배너도 걸고 출입기자들의 초청도 순조롭게 잘되어 기자들이 꽤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하긴 이 회사에선 한 십 년 만에 나오는 신제품이니 그런 반응이 당연하기도 하겠다.

홍팀장은 그런 와중 내심 마음이 불안하다. 사장님께서 취임 후 첫 외부 노출이시고, 출입기자들에게 대해서 상당히 부담감을 많이 느껴 걱정을 많이 하신다. 특히 신제품 출시 이후 진행되는 질의 응답시간에 부담을 최고로 느끼신다. 하루에도 몇 번씩 홍팀장을 불러 질의 응답 내용을 확인하시곤 한다.

홍팀장은 팀원들과 함께 이미 예상질의응답을 만들어 사장님께 보고한 상태다. 출입기자들이 알고 싶어 하는 핵심 질문들을 리스트화 해서 그에 대해 적절한 답변을 마케팅쪽과 함께 아주 자세하게 만들어서 이미 보고를 마쳤다. 그러나 사장님께서는 답변 표현 하나 하나까지 세심하게 다듬으시고, 재차 확인하시면서 추가 준비를 하시는 듯 하다.

   
 

 

기자간담회 당일. 제품출시 관련 발표와 마케팅 임원의 신제품 프리젠테이션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이어서 사장님을 포함한 신제품 관련 임원 분들 총 5분이 단상 테이블에 착석을 하고, 출입기자들의 질문이 시작됐다.

인터뷰 답변은 One Voice로!
" 예, 저는 OO일보 왕신랄인데요. 사장님께 질문 드리겠습니다. 이번 신제품 컨셉이 웰빙이고, 또 유기농이라는 것으로 보이는데 맞습니까?" 사장님이 웃으면서 답변하신다. "네, 맞습니다. 아까 말씀 드린대로 100% 유기농입니다." "근데 요즘 소비자 트렌드를 볼 때 웰빙은 이미 한 물 지나간 이슈 같아서 말입니다. 이 제품이 한 1~2년 전에만 나왔어도 딱 들어 맞을 텐데 너무 늦게 나온 것 같다 보시지 않습니까?"

사장님의 표정이 흠칫 한다. 사내에서도 이 문제로 말들이 많았었다. 사실 이 제품의 최초 개발 제안은 3년 전이었고, 본사 결정이 자꾸 늦어진 관계로 이런 타이밍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사장님은 답변을 생각하는 듯 잠시 말씀을 멈추시더니 이어 나가셨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욕구가 건강하게 오래 잘 사는 것이라고 봅니다. 저희 마케팅의 소비자 분석 자료에서도 제시되었다시피, 현재도 웰빙과 함께 유기농 식품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은 이 시장 전체 소비자들의 약 70% 이상 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또 그 외 나머지 소비자들의 경우에도 '가격만 적절하다면 당연히 유기농으로 웰빙 하겠다'는 비율이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신제품을 통해 저희는 시장에서 충분히 성공할 자신이 있습니다."

다른 기자가 손을 들며 질문한다. "얼마 전에도 모 식품회사가 식자재로 유기농을 썼다 대대적으로 광고하다가 그 재료 일부가 유기농이 아니라는 논란이 제기돼 거센 소비자들의 비판에 직면했습니다. 결국은 그 제품을 시장에서 철수시켰는데요. 이번 신제품에는 100% 유기농 재료들만 사용되었다는 것을 믿어도 되나요?"

사장님이 자신있게 답변한다. "제 이름과 회사의 명예를 걸 테니 신제품이 완전 유기농 원료로 만들어졌다는 신뢰를 가져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저희는 소비자들의 건강에 유익한 제품만을 만들기 위해 항상 원재료를 철저하게 선별해 사용합니다."

기자들의 열띤 질문들이 이어졌다. 답변은 마케팅 부사장을 넘어, 생산 부사장에게까지 이어졌다. 생산 부사장님은 평생 회사 제조공장에서 재직해 오신 분으로 오직 생산과 생산기술에 대해서만 생각하시는 분이다. 대학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하신 분이라 특히나 식재료에 대해서는 민감하시고 엄격하신 분으로 사내에 알려져 있다.

홍팀장은 곧 질의 응답을 마무리 지을 테니, 식사를 내오라는 명령을 호텔측에다 했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 하나만을 기자들에게 요청했다. 한 기자가 질문을 한다. "생산 부사장님께 마지막으로 여쭙겠습니다. 회사에서 식품 생산을 하신지 얼마나 되셨지요?" 생산 부사장이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답변한다. "네…한 25년 정도 돼갑니다."

기자가 묻는다. "사장님을 비롯해 임원분들이 모두 한 목소리로 이번 제품이 유기농 원재료를 사용한 완전 웰빙 식품이라고 하시는데…그럼 이전에 25년간 부사장님께서 생산해 오신 제품들은 유기농 원재료를 사용하지 않았으므로 몸에 좋지 못한 제품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될까요?"

생산부사 장님이 흠칫한다. 이건 미처 예상질의응답에 포함이 되지 않았던 이슈다. 홍팀장이 끼어 들려고 하는데 생산 부사장이 말씀 한다. "아니죠. 그 때는 유기농이다, 아니다 라는 기준이 그렇게 명확하지가 않았고, 소비자들도 그런 쪽에 많이 신경을 안 쓰셨고…해서…"

기자가 묻는다. "그러니까..그 이전 제품들은 이번 신제품처럼 몸에 이로운 제품들은 아니었다는 말씀이시네요. 당시 상황이 어떻게 되었건 말입니다." 생산 부사장이 얼굴을 붉히며 말한다. "아니, 웰빙이다 아니다 라는 이슈가 당시에는 적용이 안되었다는 것이지…그것들이 몸에 좋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죠."

홍팀장이 끼어 든다. "네..네.. 이번 신제품이 웰빙 제품이라는 것은 좀 더 저희 회사가 소비자들의 소비 트렌드에 맞추기 위해 노력한 결과라고 보시면 될 듯 하고요…그럼 이것으로…"

충분한 예상질의응답 준비 필요

   
 

 
갑자기 다른 기자가 질문을 이어 나간다. "홍팀장님, 저 하나 질문만 더 하구요. 딱 하나만…생산 부사장님, 최근에 경쟁사는 원재료에서 GMO Free 선언을 했는데요. 그러면 이번 귀사의 신제품 원재료들도 GMO Free 원료라고 봐도 되겠습니까?" 홍팀장은 순간 생산 부사장을 바라보면서 눈을 크게 떴다. 위험하다.

생산 부사장은 답변을 반사적으로 쏟아내신다. "기술적으로 GMO Free는 아닙니다. 유기농이기는 하지만, 그 원재료들이 전부 GMO Free다, 아니다 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경쟁사가 GMO 이야기를 하는 것은 마케팅적으로 우리를 공격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 같은데…" 홍팀장은 생산 부사장의 말을 잘라야만 했다. "네…네…시간관계상 공식적인 질의응답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추가 질문이 있으시면 제게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서면으로 추후 정리해서 답변 드리겠습니다."

기자들이 소리친다. "아니, GMO Free냐, 아니냐가 요즘 이슈인데…이 질문을 막으면 어떻게 해요? 사장님, 유기농 원재료라는 것 보다 GMO Free 원재료가 더 낫다는 건가요? 소비자들을 위해서 원재료를 완벽하게 선별하신다고 하셨는데…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GMO 원재료는 그 선별기준에 들어있지 않은 건가요?"

홍팀장은 얼굴을 감싼다. 사장님의 얼굴은 백지장이 되셔서 홍팀장을 바라보고, 생산 부사장은 말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닫고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마케팅 부사장은 홍팀장에게 어떻게 해보라는 손짓을 해댄다. 빨리 간담회를 끝내려는 홍팀장에게 기자들의 원성이 커지고, 시니컬 하게 돌아서는 기자들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한다.

항상 기자들과 마주 앉을 때는 충분한 예상질의응답 준비가 필요하다. 가능한 모든 질문들을 책상위에 올려 놓는 것이 좋다. 질문은 단발성으로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이슈에 대해 꼬리에 꼬리를 물더라도 답변할 수 있도록 답변이 하나의 망(network)을 이루어야 한다.

보통 전문분야에 따라 임원들이 답변을 갈라 맡아 하기도 하는데, 이 때 각 부문별 답변의 내용이 서로 상치되거나 모순되면 안 된다. 논리적으로 서로의 답변이 서로를 검증하는 형태가 되어야 한다. 또한 답변을 하지 말아야 하는 이슈, 강조해야 하는 이슈들을 모든 답변자들이 정확하게 공유를 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입을 하나로 완벽하게 맞추는 것이 안전하다는 뜻이다. 그게 힘들다면 물리적으로라도 딱 한명의 답변자(또는 대변인)만 마주 앉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