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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Insight!

[정용민의 미디어 트레이닝 51편] 적당히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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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해라

[정용민의 미디어 트레이닝]

기업&미디어 web@biznmedia.com




홍 팀장 회사는 얼마 전 외부 컨설팅 회사를 통해 '위기 요소 진단'을 진행했다. 홍보팀과 컨설턴트들이 한달 여간 태스크 포스를 만들어 각종 서베이, 인터뷰 그리고 분석작업들을 통해 회사에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거의 모든 위기 요소들을 진단해 냈다.

프로젝트 마지막 날 홍팀장은 컨설팅 결과를 잘 정리해 사장님과 임원들 앞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했다. 보통 최종 보고회는 외부 컨설턴트가 프리젠테이션 하기 마련이지만 홍팀장은 좀 더 그 결과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해 자신이 직접 나서서 프리젠테이션 했다.

"결론적으로 저희 회사의 가장 중요한 위기 요소들은 총 14개로 추려졌습니다. OO부분..OO부분..OO부분…" 사장님과 임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님께서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신다. "수고했습니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같이 아주 정확하게 위기 요소들을 끄집어내 주었네요. 그 하나 하나에 대해 각 부문별로 예방 대책들과 발생시 대응 방법들을 미리 고안해서 다음달 회의 시에 홍보팀에서 취합 보고 해 주기 바랍니다. 여기 계신 임원 분들께서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상."

   
 

 

홍팀장은 회의를 마치고 나오면서 속이 시원해 지는 걸 느꼈다. 이제부터는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소위 맨땅에 헤딩하는 사례들이 줄어들 것으로 생각하니 속이 편해진다. 홍팀장은 몇 달 전 까지도 고생했었던 위기 사례들을 떠 올린다. 제품에서는 정기적(?)으로 이물질이 보고되고, 영업직원들은 각종 문제들을 보고한다. 일부 주간지 기자들이 항상 회사를 드나들고, TV 탐사 취재팀이 매장을 덮치는 때가 다반사다. 본사에서는 유해한 제품 성분을 당분간 속이라고 하질 않나, 사장님은 사업보다는 정치쪽에 관심이 있는 것 같다고 출입기자들이 소곤댄다. 예전 직원들의 불법적인 일들이 하나 둘씩 드러나고, 각종 거래처 소송이 줄을 이었다.

홍보 너무 잘 해도 손해?
"우리회사 창사 이래 이렇게 위험스러운 일들이 줄을 잇는 건 처음일 거야…어디서부터 잘 못된 걸까?" 홍팀장은 그래도 이렇게 연이은 위기상황들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막아냈었다. 출입기자들은 홍팀장을 도리어 불쌍하다 평가해 준다. 때로는 함께 술자리를 가지면서 눈물 머금은 신세한탄을 해 기자들의 심금을 자극할 때도 있다. 친한 기자들은 "홍팀장님 때문에 내가 부장이 조지라고 해도 나서서 부장을 설득 한다고요. 우리 부장도 홍팀장 얼굴 봐서 그렇게 극단적으로 까지는 몰아치지 못하는 눈치니까…"한다.

그렇게 회사를 골탕 먹였던 주간지 기자들도 가끔 홍팀장과 소주를 한잔하면 "홍팀장님도 참 못할 짓 하십니다. 다음 번엔 제가 조금 미리 연락드릴께요"한다. 몇 번 우는 소리를 해서 아주 부정적인 기사들을 돈도 안들이고 막아낸 적도 있다. 완전 구걸과 빈티를 내고 때로는 강짜를 부려서까지 기사를 뺐다.

기자들에게 성난 탄원서를 돌린 소비자를 찾아가서 그 소비자와 소주를 마신 적도 있다. 한숨 섞인 소줏잔으로 소비자의 마음을 풀어 기자들에게 돌린 탄원서를 취소한다는 이메일을 얻어 낸 적도 있다. 그 소비자와는 지금도 형, 동생 하면서 연락을 한다.

   
 

 
몇몇 탐사취재 프로그램 PD들과는 이제 하도 봐서 선후배 인맥으로 엮여 있다. 그렇다고 봐줄 선수들은 아니라고 보지만, 예전처럼 그냥 맥없이 당하는 일은 조금 줄 것이라고 생각하니 그게 어딘가. 그 PD들은 "홍팀장에게 전화만 오면 아주 복잡해 마음이. 내가 다시는 홍팀장네 회사 취재는 안 맡는다…"하면서 치를 떤다. 그래도 좋은 사람들이다.

"이제 회사 전체 부문이 위기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대책을 세우면 한층 나아질꺼야…" 홍팀장은 기분 좋게 담배 한 모금을 내 뿜으면서 웃었다. 이때 홍팀장의 전화가 울린다. "네, 홍길동입니다." "홍팀장, 나 기획팀장인데 잠깐 보자. 대회의실로 와." 기획팀장은 홍팀장의 입사 2기수 선배다. 또 대학 선배에다가 이전에 홍보팀장을 거친 분이라 항상 깍듯하게 모시는 분이다.

홍팀장이 대회의실로 들어서니 각 부문의 핵심 팀장들이 다 모여 있다. 기획팀장이 한마디 한다. "아니 홍보팀에서 무슨 이런 일을 벌여서 가뜩이나 바쁜데 모두를 힘들게 해?" "네?" 홍팀장은 무슨 말인지 어리둥절하다.

"부문 부사장들이 내려와서 각 팀장들에게 위기 요소인가 뭔가를 몇 개씩 내려주고 대응 방침을 마련하라는 데 이게 얼마나 큰 숙제인지 알아? 지금 내년도 비즈니스 플랜도 만들어야 하고 예산작업 하는데도 맨날 야근하고 밤새우는 데 이게 또 뭔 짓이냐고?"

홍팀장은 물러서지 않고 대답한다. "여기 계신 팀장님들도 다 아시겠지만 얼마나 요즘 이슈들이 많았습니까? 한번 터지면 회사 존립 자체가 왔다 갔다 하는 이슈들이 연이어 터지고 있는데 이걸 계속 이런 방식으로 대응하는 게 옳다고 보세요?"

영업팀장이 쓴웃음을 지으면서 이야기 한다. "아니, 우리가 말하는 건. 홍보팀이 왜 있냐 이거예요. 이런 위기 요소라는 것 막고 기사 빼고 하라고 있는 거 아니냐 이거죠. 왜 이런 걸 우리에게 찢어서 일을 맡기냐는 거예요. 홍보팀에서 해주면 되죠."

홍팀장이 황당해서 소리친다. "홍보팀이 어떻게 각 부문에서 상존하는 잠재 이슈들을 하나 하나 찾아가면서 대응책을 마련합니까? 천명도 넘는 영업직원들에 지점직원들까지 홍보팀 지휘하에 있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일선 부서에서 각각 대응책을 마련해야 그게 실제적이기도 하고요. 안 그렇습니까? 영업팀장님?"

그래서 홍보는 중요하다!
마케팅 팀장이 귀찮다는 듯이 끼어든다. "홍팀장님, 지금까지 잘 해왔잖아요. 기사도 거의 다 빼시고, 그래서 저희가 항상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저번에 TV 취재도 어떻게 잘 빼주셨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그렇게만 해주세요. 언론에만 안 나가도 어딥니까? 우리는 그냥 부문에서 지원 해 드릴 테니까…"

홍팀장은 한숨을 쉬면서 회의실 바닥을 내려다 본다. 팀장들이 다들 한 목소리로 "맞아 맞아… 홍보팀이 잘하니까 뭐. 파이팅…"한다. 다들 회의실에서 일어서면서 말한다. "그러면 부사장님들에게 홍보팀에서 알아서 한다고 보고드릴께요. 팀장 회의에서 합의를 보았다고. 홍팀장님 부탁해요."

홍팀장은 비틀거리면서 홍보팀원들을 불러 모았다. 온라인 모니터링에 밤낮과 주말이 없는 조과장, 방송국이나 각 사 기자실 주변에서 뻣치기부터 연이은 술값정산에 요즘 부쩍 흰머리가 생긴 김과장, 아예 치킨, 피자, 생맥주 배달부가 되어버린 두 여자 대리들…그들 하나 하나의 얼굴을 돌아본다. 홍보팀원들은 이미 모든 이야기들을 들었는지 다시 원위치로 돌아온 상황을 이해한다는 표정이다.

무척이나 아이러니 한 이야기지만 위기관리를 너무 잘해도 홍보팀은 위험하다. 위기관리에 완전 실패하면 물론 홍보팀에 책임이 많은 부분 돌아가지만, 그 반대로 너무 위기관리를 깔끔하게 잘해도 홍보팀은 위험해진다. 조직은 면역이 생긴다. 홍보팀이 고생 고생해서 막은 기사들이 조직 차원에서는 원래 없었던 문제들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한 두 해 위기를 완벽히 막아(!)낸 홍보팀이 있는 회사에서는 '홍보팀이 있을 필요가 있나? 아무 문제가 없고 너무 잘 되어 가고 있는데?' 하는 홍보팀 무용론까지 대두되는 경우까지 있다. 적절히 잘해야지 너무 잘하면 홍보팀에는 사실 손해다. 물론 이런 생각이 조직에게 도움이 되지는 않지만, 현실이 많은 부분 그러니 어쩔까.


정 용 민

   
 

 
PR컨설팅그룹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 부사장
前 오비맥주 홍보팀장
前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 부장
ICO Global Communication, LG-EDS, JTI Korea, KTF, 제일은행, Agribrand Purina Korea, Cargill, L'Oreal 등 다수 국내외 기업 경영진들 대상 Media Training
Hill & Knowlton, Crisis Management Training Course 이수
영국 Isherwood Communications, Media Training and Crisis Simulation Session 이수
영국 Isherwood Communications, 두번째 Media Training and Crisis Simulation Training 기법 사사
네덜란드 위기관리 컨설팅회사 CRG의 Media training/crisis simulation session 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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